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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 전화번호도 없던 전화번호부, 그다음은 무엇일까?

전서구와 교환원, 삐삐와 스마트폰을 지나 다음 정보 탐색 수단은 무엇이 될까? AI 안경·렌즈·뇌-컴퓨터 연결까지 열린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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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 전화번호도 없던 전화번호부, 그다음은 무엇일까?

이 글은 특정 기술의 성공이나 미래를 단정하는 보고서가 아닙니다. 역사와 현재의 장면을 연결하며 앞으로의 세상을 개인적인 시선으로 상상하는 인스톰 칼럼입니다. 본문의 미래 장면과 이미지는 사실 보도가 아닌 가정과 상상입니다.

1878년 미국 뉴헤이븐에서 전화번호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부에 전화번호가 없었습니다.

약 50명의 가입자 이름만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환원에게 연결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웃을지도 모릅니다. “전화번호가 없는데 어떻게 전화를 해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오히려 20년 뒤를 떠올립니다. 그때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이렇게 묻지는 않을까요?

“예전에는 정보를 찾으려고 검색창에 글자를 하나씩 쳤다고요?”

전서구에서 스마트폰까지, 우리는 무엇을 바꿨을까요?

아주 오래전에는 멀리 소식을 보내기 위해 사람에게 편지를 맡기거나, 원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비둘기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전서구라는 통신 방법입니다.

그다음 전신이 생겼습니다. 전선으로 신호를 보내게 됐습니다. 전화는 사람의 목소리를 먼 곳으로 옮겼습니다. 한때는 삐삐에서 번호를 확인하고 공중전화를 찾아 뛰어가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진 뒤에는 주소를 외우는 대신 검색어를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지도와 사진, 검색과 예약까지 작은 기계 하나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한 기술이 나오면 다른 기술이 그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편지와 전화는 오래 함께 쓰였습니다. 그럼에도 긴 흐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동작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종이책을 뒤적이는 일, 번호를 외우는 일, PC 앞에 앉아야만 검색할 수 있었던 일이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동작이 줄어들 차례일까요?

전서구·유선전화·삐삐·옛 컴퓨터·스마트폰이 한 장의 시간 여행처럼 펼쳐진 역사 콜라주
통신의 역사는 여러 기술이 겹치며 발전했습니다. 실제 유물 사진을 뜻하는 자료가 아니라 시대별 도구를 재구성한 창작 이미지입니다.

기술은 몇 년마다 한 번씩 바뀔까요?

저는 가끔 신기한 생각을 합니다. 전화 다음에 삐삐, 인터넷 다음에 스마트폰. 혹시 기술에도 정해진 주기가 있을까요?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무어의 법칙입니다. 1965년 고든 무어는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흐름을 관찰했습니다. 당시에는 약 1년마다 두 배, 1975년에는 약 2년마다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수정했습니다.

칩 안에 더 많은 부품이 들어가면서 컴퓨터는 작아지고 강력해졌습니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은 모든 제품이 10년마다 바뀐다는 마법의 시계가 아닙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관찰한 흐름입니다.

또 다른 생각은 혁신의 확산입니다. 에버렛 로저스는 새로운 기술을 처음에는 소수가 사용하다가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흔히 S자 모양으로 나타나는 보급 곡선이 그 예입니다.

이 연구들도 “2036년에는 모두 AI 안경을 쓴다”는 날짜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점이 재미있습니다.

기술이 가능해지는 때와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때는 다릅니다.

30여 년 전, 화면을 의식하지 않는 컴퓨터를 상상했습니다

1991년 컴퓨터 과학자 마크 와이저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컴퓨터를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깊이 스며들면 사람들이 기술의 존재 자체를 굳이 의식하지 않게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수도꼭지를 틀며 정수 시설의 모든 과정을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전등 스위치를 누를 때 발전소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AI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2025년 메타는 한쪽 시야에 짧은 정보를 보여 주는 디스플레이형 AI 안경을 선보였습니다. 2026년 삼성전자와 구글은 카메라·마이크·스피커를 이용하되 디스플레이는 없는 AI 안경을 공개했습니다.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 도움을 받는 방향을 실험합니다.

같은 안경이라고 부르지만 한쪽은 화면을 넣고, 다른 쪽은 화면을 없앴습니다. 이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다음 기기가 반드시 더 큰 화면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AI 안경일까요? 렌즈일까요? 아니면 뉴럴링크 같은 기술일까요?

길에서 처음 보는 꽃을 만났습니다. 지금이라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고 검색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안경을 쓴 채 “이 꽃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면 AI가 바로 설명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꼭 안경이어야 할까요?

시야 한쪽에 작은 화면이 있는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콘택트렌즈 형태일 수도 있겠죠. 화면은 아예 없고 귀로만 설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아주 다른 방법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뇌에 기기를 삽입하는 방식은 현재 의료·연구 성격이 강하고, 일상적인 소비자 제품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렌즈 역시 안전성과 기술 문제를 넘어야 합니다. 안경도 배터리·착용감·사생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 다음은 무조건 AI 안경”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화면을 직접 열어야 하는 일이 줄어든다면, 그다음 모습은 무엇일까?”가 진짜 질문입니다.

도시의 일상에 주변 상황 기반 정보가 스며드는 미래를 상상한 빈티지 종이 콜라주
AI 안경은 여러 후보 중 하나입니다. 미래의 표준 인터페이스가 무엇일지는 아직 열려 있습니다. 상상에 기초한 일러스트입니다.

노디스플레이는 화면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긴 계약서를 검토할 때는 큰 화면이 필요할 겁니다. 친구의 영상을 보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다음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라는 안내를 받는 데 꼭 화면이 필요할까요? 새로운 장소의 이름을 아는 데 반드시 앱을 열어야 할까요?

제가 상상하는 노디스플레이에 가까운 시대는 화면이 완전히 없어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필요할 때는 보고,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시대입니다.

전화번호도 없던 전화번호부를 만들었던 사람은 150년 뒤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다음 도구가 무엇일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합니다. 과연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AI가 정보를 대신 찾아주게 되면, 우리는 어떤 정보를 보게 될까요? 다음 편에서는 바로 그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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